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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유럽이야기

유럽의 마녀사냥과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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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마녀사냥(Witch Hunts)**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수십만 명이 희생된 잔혹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질병, 기근, 전쟁 등 설명하기 어려운 불행을 마녀의 저주로 돌렸고, 교회와 국가가 이를 적극적으로 단속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되었다. 특히 여성들이 마녀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부분은 정치적, 사회적 희생양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마녀사냥이 벌어진 이유, 대표적인 마녀재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목차

     

    1.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일어난 이유

    원인설명

    종교적 이유 기독교 교리에서 이단자를 처벌하는 것이 정당화되었으며,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이 대립하면서 마녀사냥이 더욱 심화됨.
    사회적 불안 흑사병, 기근, 전쟁 등 사회적 혼란이 심할 때마다,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아 마녀로 몰아갔음.
    여성 차별 독신 여성, 미망인, 치료를 하던 여성들이 마녀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음.
    정치적 목적 왕과 귀족들은 반대 세력을 제거하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이용함.
    경제적 이유 마녀로 몰린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경제적 동기에서 마녀재판이 진행됨.

    👉 마녀사냥은 단순한 종교적 탄압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요소가 결합된 사건이었다.

    2. 유럽의 대표적인 마녀재판과 희생자들

    ① 독일의 밤베르크 마녀재판 (1626~1631) – 가장 악명 높은 대규모 마녀재판

    **밤베르크(Bamberg)**는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한 도시로, 1626년부터 1631년까지 약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처형되었다.

    • 당시 밤베르크에서는 가뭄과 전염병이 계속되자, 교회와 지역 당국이 마녀들의 저주 때문이라고 선동했다.
    • 특히 요한 게오르크 2세 추기경이 적극적으로 마녀재판을 주도하면서, 의심만으로도 체포되는 경우가 많았다.
    • **밤베르크 마녀감옥(Bamberg Hexenhaus)**이 만들어졌으며, 체포된 사람들은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쇠막대, 손가락 분쇄기, 물고문 등을 견디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했으며, 대부분은 화형에 처해졌다.

    👉 밤베르크 마녀재판은 독일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② 잉글랜드의 펜들 마녀재판 (1612) – 가족이 서로를 고발한 사건

    **펜들 마녀재판(Pendle Witch Trials)**은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가장 악명 높은 마녀사냥 사건 중 하나다.

    • 1612년, 펜들 지역에서 12명의 사람들이 마녀 혐의로 기소되었다.
    • 이 사건의 특징은, 마녀로 몰린 사람들이 서로를 고발하면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점이다.
    • 특히 9세 소녀(제넷 디바이스, Jennet Device)가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를 마녀라고 증언하면서, 가족 전체가 사형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 10명은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1명은 감옥에서 사망, 나머지 1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 펜들 마녀재판은 당시 마녀사냥이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③ 살렘 마녀재판 (1692) – 미국에서 벌어진 가장 유명한 마녀재판

    **살렘 마녀재판(Salem Witch Trials)**은 미국 식민지 시대 매사추세츠 주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마녀사냥 사건이다.

    날짜1692~1693년

    희생자 200명 이상이 기소, 20명이 처형됨 (19명 교수형, 1명 압사)
    사건의 발단 10대 소녀들이 이상한 발작 증세를 보이자, 지역 목사가 이를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고 주장
    재판 방식 ‘물 시험’, ‘주술 시험’ 등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판결
    사건의 결말 이후 마녀재판이 과도했다는 반성이 일어나면서 종료

    👉 살렘 마녀재판은 현대에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20세기의 ‘매카시즘(공산주의 마녀사냥)’과 비교되기도 한다.

    3. 마녀로 몰린 희생자들의 이야기

    ①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 – 영웅이자 마녀로 몰린 소녀

    프랑스의 국민 영웅인 잔 다르크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 하지만 1431년, 영국 측은 그녀를 마녀와 이단자로 몰아 화형에 처했다.
    • 잔 다르크는 19세의 나이에 화형당했으나, 이후 20세기 초 프랑스의 성녀로 시성되었다.

    👉 잔 다르크는 마녀사냥의 희생자였지만, 이후 프랑스의 성녀로 재평가되었다.

    ② 메리 스펜서(Mary Spencer, 1680년경) – 억울한 희생양

    잉글랜드에서 마녀로 몰린 메리 스펜서는 단순히 허브 치료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 그녀는 감기와 두통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을 사용했으나, 일부 마을 사람들이 이를 마법이라고 오해했다.
    • 결국 마녀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 당시 여성들은 단순히 의학적 지식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었다.

    4. 마녀사냥의 종말 – 어떻게 끝났을까?

    마녀사냥은 17~18세기 후반부터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원인설명

    계몽주의의 확산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이 중요해지면서, 마녀사냥의 비논리성이 폭로됨.
    사법 체계의 변화 마녀재판이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근거 없는 고발이 줄어듦.
    종교적 갈등 완화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대립이 약화되면서, 마녀사냥이 줄어듦.
    유명한 재판의 반성 살렘 마녀재판 이후, 많은 사람들이 마녀사냥의 문제점을 깨달음.

    👉 18세기가 되면서 마녀사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후였다.

    마무리: 비이성적인 공포의 희생자들

    유럽의 마녀사냥은 단순한 종교적 박해가 아니라,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이용이 결합된 사건이었다.

    • 밤베르크, 펜들, 살렘 등의 마녀재판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 잔 다르크 같은 역사적 인물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되었다.
    • 계몽주의와 법적 개혁으로 마녀사냥은 종식되었지만, 그 상처는 오랫동안 남았다.

    👉 역사는 반복된다. 마녀사냥이 사라졌다고 해도, 오늘날에도 비이성적인 혐오와 음모론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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